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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스캔들] 재신은 왜 윤희의 마음을 얻지 못했나...재신아 행복해라...

by Gabrielle 201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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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재신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리뷰

난 재신과 윤희가 잘 되기만 바랬건만...아쉬웠지만....재신아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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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자제이고 소과 장원으로 성균관으로 들어온 인재.

문과 무를 겸비한 당대의 재원이라는 점에서 선준과 재신은 똑같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존재다.

이 멋드러진 차조남들이 모인 중이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한 사람은 윤희의 정인이 되었고

한 사람은 해바라기로 남고 말았다.

왜 걸오-재신은 윤희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

 

윤희의 눈을 가려 준 남자 재신

재신은 윤희가 여자라는 사실을 먼저 알았다.

그녀의 몸을 먼저 보았고, 그녀와 더 많이 접촉했다.

직접적인 위험에서 윤희를 구해준 건 언제나 재신이었다.

왈자패에게 돈을 빼앗길 위험에 처했을 때 몸을 날려 그녀를 구하고 돈을 지켰고

장의의 화살이 그녀에게 날아들 때에도 그녀를 안고 나뒹굴며 목숨을 지켜주었다.

관군이 종묘로 달려갈 때에도 역시 제 생명을 걸고 윤희를 지키고자 뛰어들었다.

그런데 왜 그가 아니란 말인가...!!


재신이 윤희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애쓸 때 선준은 그녀를 늘 세상과 맞서도록 세워놓았다.

과장에 설 수 없는 여자인 그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장에 세웠고

성균관에 입학할 수 없는 그녀를 성균관으로 끌어들였다.

활이라곤 만져본 적도 없으며, 그럴 힘도 딸리는 그녀에게

기적을 보여주며 과녁 앞에 서도록 만들었다.


가려주는 사랑과 드러내 부딪치게 만드는 사랑,

재신과 선준의 사랑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왈자패와 싸우며 윤희의 눈을 가려주는 재신의 첫 등장은

그가 가진 과거와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의미 깊은 장면이다.

피튀기는 눈 앞의 적나라한 현장을 보지 않도록 눈을 가려주는 재신은

세상의 날서고 참혹한 모습에서 약한 자를 보호해주려는 곱고 세심한 마음을 지녔다.

이는 그의 심성 자체가 부드럽고 섬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이미 상처과 비극에 극심하게 노출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처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졌던 재신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그러한 경험을 마주한다는 사실에는 늘  극도로 예민하다.

그가 관심을 표명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로지

상대를 보호하는 데에 집중된다.

그래서 그는 대사례에서 무자비하게 윤희에게 활쏘기 연습을 시키는 선준에게는

주먹을 쥐고 덤비라고 가르친다. 

상처 입은 손에는 해독제를 제공해주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끔 깍지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재신의 사랑법은 선준의 아버지 좌상이 윤희 부친의 죽음의 배후임이 밝혀졌을 때 극에 달한다.

재신에게는 그 사실이 어떻게든 윤희가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 되어버린다.

혹자는 이를 두고 재신의 비겁함을 말한다.

진실을 캐던 기개와 정의를 외치던 지조가 사랑에 묻혀 사라졌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상처 속에서 버티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상처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했던 

삶의 방법을 이해한다면 재신을 결코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재신이 가졌던 상처의 굴레는 그 밖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무거웠고 넓었고 깊었으리라.

형의 죽음으로 인해 풍비박산된 집안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장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았던 아버지도

극중에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 어머니도

혼자 남은 작은 아들의 충격과 상처를 돌볼 겨를이 없었으리라.

고통을 뿜어내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이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견뎌 나가는 것 외의 해법이란 없는 것이다.

가족 모두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생존하기 버거운 시간 속에서

그의 하소연을 들어줄 이도, 그를 어루만져줄 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 홍벽서질.

애초에 홍벽서는 재신에게 상처의 굴레를 뛰어넘는 방법이 될 수 없었다.

분노와 절망감으로 가슴을 쳐대는 분출의 행위에 그쳤을 뿐

그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의 눈에 가장 뜨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방어의 본능만이 그를 지배할 따름이다.

 

그러한 재신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과도 같다.

배고픈 자식을 먹이고(물, 사과, 감자, 주먹밥... 무엇보다도 "그래서 너랑 같이 밥이나 먹으려구..")

따스하게 재우고(술에 취한 그녀를 어린 아기처럼 고이 업어 누이고, "잠 안자고 책만 보면 키 안큰다" 같은 엄마 대사에, 

"네 녀석 고약한 잠버릇을 피해 난 용하 녀석에게 갈 생각이다..." 같은 배려심 돋는 오빠의 마음)


위험이 닥쳐올 땐 몸을 던져 미리 막아주고 위험과 대면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한 엄마의 사랑이란 자식이 철들고 나서야, 자식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인식될 뿐이다.

게다가 불행한 사실은 윤희에게 필요했던 것은

음지에서 희생하며 기다리는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윤희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윤희에게 숨긴 것이

결코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윤희의 엘렉트라 컴플렉스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윤희는 당시의 여자로선 품어서는 안되는

배움의 욕망과 능력과 뜻을 펼칠 기회까지 탐을 냈던 여인이다.

어려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책임지다 뜻하지 않게 들어오게 된 성균관은

사실 그녀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곳이었다.

소녀가장이란 타이틀은 윤희라는 인물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장에 걸맞는 능력과 배포를 타고 났으나 시대로 인해 그 능력을 제한당했으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는 대가로 그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처럼 그녀에게 양면성을 띠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생계의 고통으로 그녀를 억누른 동시에

의도치 않았던 기회를 줌으로써 그녀를 어느 정도 성장시킨다(실질적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죽음과 관계된 진실을 추구하면서

그녀는 성장의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버지는 이제 그녀가 되살펴보고 짚어보아야 할 근원이 되며,

그녀가 추구해야 할 학문의, 정신의, 이상의 실체가 된다.

윤희는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서 성장해 왔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그런 윤희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윤희가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아버지의 존재를 최소화하고

죽음의 진실을 함구하며 그녀를 비극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모성적 사랑으로는

윤희와 발을 맞출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균관에 오기 전 그녀는 그런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고

그러한 보호가 그녀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윤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진실에 눈뜨지 않고 사는 편안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신만의 세계, 그 안의 원칙주의자 선준
까탈스러울 정도의 원칙주의자 선준, 그러나 그가 가진 이성과 학문의 힘은

그 누구도 그의 원칙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선준의 강점은 원칙과 논리가 이상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잘 버무려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나 그 원칙과 논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가다듬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준은 윤희를 편하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도전하여 자신의 한계를 깨도록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가 꿈꾸지 못했던 꿈을 꾸게 만든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아무하고나 혼인하는 길 밖에는 없던 그녀를 더 깊고 높은 학문의 전당으로 이끌고

활쏘기 훈련을 통해서는 여인의 육체적 한계조차 극복하게 만들었다.

선준 자신이 편견과 금기를 깬 사랑의 커밍 아웃을 함으로써

신분과 시대의 질서를 뛰어넘는 사랑을 윤희에게 꿈꾸도록 만들었다.

 

재신이 왈자패에게서 돈을 되찾아줌으로써 윤희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유예시킨 데 반해

그녀를 성균관으로 데리고 들어온 선준은 그녀에게 더 큰 위기와 더 큰 기회를 동시에 쥐어준다.

장의의 화살이 겨누는 그녀의 몸을 재신이 낚아채는 데 반해

선준은 그 위험의 근원인 활 자체를 낚아챈다.

10년 전 진실로부터 그녀의 눈을 가려주기 위해 재신이 은폐를 선택하는데 반해

선준은 진실을 절개하고 그 상처를 드러내는 길을 택한다. 소독하고 치유하기 위함이다.

불행과 위험의 근원을 차단하거나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아프게 소독하고 지져서 없애버리는 

선준의 사랑법과 그 어떤 아픔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더 멀리 내다볼 겨를이 없이

제 몸을 던져서라도 당장의 그늘을 없애주고픈 재신의 사랑법.

윤희가 아버지의 비극으로 인해 생존의 고통을 맛보지 못한 여인이었다면

재신의 사랑이 통하고도 남았으리라.

그러나, 윤희가 겪은 가난과 생활고는 눈 앞의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깨우쳐 주었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재신은 숙명적으로 윤희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가진 고난, 상처를 알아보았고, 여린 몸으로 그 앞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윤희의 아버지와 재신의 형이 한 날, 한 밀명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윤희와의 필연적인 고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문제는 윤희에겐 자신의 상처가 자각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부재, 그 진실을 알지 못했던 윤희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상처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결핍이었고, 현실의 궁핍함을 가져다 준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윤희는 상처를 감싸줄 재신보다는

결핍을 해소해줄 수 있는, 도전과 성취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준에게 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준과 윤희를 지켜보며 재신은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윤희의 마음이 자신을 향하지 않음을 알기에 현실을 뒤집고 역행하기보다는,

상처의 무게를 참아내며 스스로 견디는 데에만 길들여진 재신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됐다, 가.  익숙한 일이야.")

또한, 자신이 본능적으로 택하고마는 윤희에 대한 사랑법보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결국엔 그녀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선준의 사랑법에 어쩌면 재신 또한

깊은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후면 끝이다.

선준과 윤희는 사랑을 더욱 확인할 것이며, 어려움 속에서 그 사랑을 지켜낼 것이다.

재신에게 사랑은 아픔이자 성장의 촉매제이다.

형의 죽음 이후, 감정이란 없는 것처럼, 허공을 떠도는 눈동자로 살며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했던 

재신은 윤희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며 서서히 자신의 삶으로 스며들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촛점을 찾았으며, 옷깃은 더이상 헤쳐져 휘날리지 않게 되었다.

(옷으로 표현된 재신의 심리는 절묘하지 않은가?

처음 등장할 때 가장 해지고 바랜 데다 고름을 여미지도 않았던 재신의 옷차림은

윤희의 성별을 알고 난 뒤 얌전해졌다가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갈 때엔

심지어 비단옷으로 화사해진다.

선준과 윤희의 관계를 알게 된 뒤에는 다시 무명옷으로 돌아오고

윤희를 마음 속에서 떠내보내기로 한 19, 20회에는

처음으로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 입은 모습까지 등장할 모양이다.

윤희를 받아들이고 보내는 과정은 그러므로 재신이 다시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이며,

그가 극심한 고통과 방황을 거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발을 붙이게 되는 과정이다.

갓과 도포는 재신의 정신적, 심리적 성장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속한 방에 들어와 잠을 자며, 다른 사람과 말을 섞게 되었다.

형을 떠내보낸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화해를 했으며,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났고, 그로부터의 인정 또한 받게 되었다.

형의 유훈을 세상에 펼칠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 마음으로 따르고 싶은 군주를 만나게 되었다.

한 상처가 아무는 동안 또 다른 상처가 그에게 아로새겨진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가 그의 정신을 빼앗아가 미친 말로 날뛰게 한 것이라면

이 상처는 그에게 자각을 주고, 감각을 돌려주고, 감정을 되살려 놓는다.

분노와 충격, 허탈감과 원망이 뒤섞여 혼을 빼앗아간 채

육체의 아픔도 마음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10년은 이제 저물었다.

사랑의 아픔과 칼날의 아픔과 질투의 아픔이 찾아온 것은 어쩌면 재신에게 행운이다.

그의 상처를 알아보아줄 사람, 그것을 어루만지기 위해 다가올 사람,

있을 것이다.

재신아,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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